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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다 (7-2) | 운영자 | 2025-0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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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7:11-17절 개역개정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한 과부의 아들이 죽음(11-13절) 예수님께서 얼마 후에 나인이란 성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나인 성문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고 나옵니다. 과부로 살기 힘든데, 그녀의 전부와 같은 외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이 여인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큰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에 그 성의 많은 사람이 동참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때에 주께서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고 하셨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의 원어상 뜻은 내장이나 심장이 흔들릴 정도로 애처로운 감정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은 독자를 잃어 슬퍼하는 과부의 모습을 보시고 깊은 비통함과 연민을 느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로 온 죽음의 현실과 슬픔당한 과부의 마음을 이해하시는 참사람의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런 위로밖에 해줄 것이 없지만, 죽음을 이기실 예수님은 진실로 실질적인 격려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슬픔과 아픔을 만난 분들에게 최고의 위로와 격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2.예수님이 죽은 청년을 살리심(14-17절) 그런 후에 예수님은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십니다. 당시 율법(민19:11)은 죽은 자의 관에 손이 닿으면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기에, 유대인은 장례 주관자가 아니면 그 관에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율법을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께서 그 관에 손을 대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법이 율법의 문자적 규정을 뛰어넘으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치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도 ‘아이야 일어나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주님 앞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엘리야도 죽은 아이를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렸지만,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셔서 살리심에서 다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부활이 실제로 있음과 주님의 재림 때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됨을 소망케 해줍니다. 이제 예수님은 살아난 아들을 어머니에게 주시는데, 이것은 주님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의 필요도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가득 차서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라고 찬양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다는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졌다고 나옵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이 죄를 대속하러 오신 예수님을 제대로 인식하진 못했을지라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은 큰 소망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도 죄 사함과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붙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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